193위: 뱀파이어 (1932)
감독: 칼 테오도르 드레이어
촬영: 루돌프 마테, 루이스 네
주연: 줄리안 웨스트, 시빌 슈미츠, 얀 히어로님코, 모리스 슈츠
드레이어가 <잔 다르크의 수난>(1928) 다음으로 만든 작품은 샘솟는 아이디어, 번뜩이는 카메라, 뭉개진 서사, 남다른 캐릭터의 인광으로 직조한 흡혈귀 영화다.
<뱀파이어>는 주인공 청년이 피터팬처럼 멋대로 돌아다니는 그림자를 목격한 후부터 본격적으로 감독 의지의 구현체로 작동한다. 카메라는 그저 감탄의 연속이다. 전후좌우 트래킹과 360도 회전은 기본이고, 때로는 등장인물이 카메라의 좌우 흐름에 역행하여 프레임 저 멀리 휙 멀어지거나 반대로 급작스럽게 맞부딪치며 프레임 안으로 불쑥 들어온다.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인 누운 시체의 시점은 말할 것도 없다.
서사의 전개도 의외의 연속이다. 난데 없이 육신에서 가출한 주인공의 영혼은 죽은 자기 자신의 시체를 내려다보고, 사건의 해결은 뱀파이어 책을 열심히 읽은 청년이 아니라 그 책을 우연히 집어 든 집사의 손에 맡겨진다. 뱀파이어를 추종하던 의사가 갑자기 방앗간에 갇혀 밀가루에 질식해 죽는 것도 뜻밖이다.
캐릭터의 면면 또한 놀람의 연속이다. 중후한 노인네로 등장한 뱀파이어는 쇼팽이란 이름을 가진 할머니로 밝혀지고, 할머니에게 목을 물린 아가씨는 섬뜩한 악마의 얼굴-<잔 다르크의 수난>의 사악한 성직자들의 얼굴과 맞먹는-로 동생을 노려본다. <뱀파이어>는 그 독창성이 시대를 너무 앞섰기 때문에 이후 전개된 흡혈귀 영화의 역사를-<드라큘라>(1931), <드라큘라>(1958), <드라큘라>(1992)- 모조리 고만고만한 장르 영화의 연속으로 만들어버렸다.
감독 자신도 본인이 만든 초기 유성 영화 시대의 70분 짜리 필름이 흡혈귀 영화의 영원한 지존으로 남을 줄은 몰랐을 것이다.
★Only one Cut
육신에서 가출한 청년의 영혼이 관 속에 누운 자기 자신을 만난다. 자기의 시신은 눈을 부릅뜨고 있다. 곧 사람들이 관을 들고 나간다. 관 뚜껑에는 창문이 있어 바깥을 볼 수 있다. 그렇게 카메라가 두 눈 부릅 뜬 시신의 시점이 되어 하늘을 향한 채 움직인다. 자기를 내려다보는 사람, 실내의 천장, 나무, 우뚝 솟은 대저택을 올려다보며 한참을 움직인다.
글/윤호준 (영화애호가, 자유기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