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류 씨네필의 인생영화] 192위: 잠입자
[이류 씨네필의 인생영화] 192위: 잠입자
  • 윤호준
  • 승인 2020.01.07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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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위: 잠입자 (1979)

감독: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촬영: 알렉산드르 니야진스키

주연: 알렉산드르 카지다노프스키, 아나톨리 솔로니친, 니콜라이 그린코, 알리사 프레인들리크

어느 영화 고수의 블로그에서 "나에겐 아직도 브레송이 넘사벽이다"라는 푸념을 본 적이 있다. 애석하게도 나에겐 타르코프스키가 그렇다(브레송은 정말 최고다!).

웰스는 현대성이 부족하고 히치콕은 과대 해석됐다고 주저 없이 말할 수 있지만 타르코프스키 앞에서는 그냥 겸손해질 뿐이다. 나는 왜 그의 영화가 미치도록 좋아지지 않을까. 보잘 것 없는 영화 편력의 급소가 돼버린 영화들, 그래도 그 중에서 <잠입자>는 내 마음을 가장 많이 움직인 작품이다.

배우들은 희망과 구원과 소명에 대해 설파하고 카메라는 좌우 트래킹과 줌 인&아웃으로 끝없이 신비로운 공간을 창조해내는 이 영화에서 나에겐 세 곳이 인상 깊게 남았다. 철로를 따라 구역으로 진입하는 동안 배우들의 뒤통수와 옆모습과 희미한 전경을 오래도록 보여주는 장면, 구역 내에서 가장 위험한 공간으로 알려진 '푸줏간'의 모래 둔덕들, 그리고 세 배우가 드러누워 한참 동안 논쟁하는 폐허의 시냇물.

이 중에서 제일 좋아하는 건 폐허의 시냇물이다. <솔라리스>(1972) 수초 이미지의 거대한 확장이라 할 만한 기나긴 수면 클로즈업, 그 아래 잠긴 온갖 잡동사니들, 이끼와 물빛의 반사, 물 바로 옆에 엎드린 배우들의 얼굴, 불쑥 나타난 검은 개, 그리고 배우들의 논쟁. 이 모든 것이 독보적이고 깊고 아름답다.

신/구역은 하반신 마비를 주었고 동시에 염력도 주었다는 결말이 그저 그렇지만 물/수면의 영상만으로도 <잠입자>는 반복 시청의 명분을 갖기에 충분하다. 10년 후엔 내 목록에서 이 영화의 순위가 많이 올라갈지도 모른다. 그때는 <거울>도 많이 좋아하게 될 것 같다.   

 

★Only one Cut

저곳은 폐허이고 쓰레기장이다. 구정물이 흐르는 도랑이고 버린 물건들이 처박힌 시궁창이다. 타르코프스키는 그곳에서 빛을 찾고 움직임을 찾고 누군가의 과거를 들여다본다. 이곳은 무엇이었을까? 

글/윤호준 (영화애호가,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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