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위: 방랑자 (1985)
감독: 야네스 바르다
촬영: 패트릭 블로시에르
주연: 상드린 보네르, 마샤 메릴, 욜랑드 모로, 패트릭 렙친스키
시작부터 주인공의 시체를 보여주는 의도는 명백하다. 섣부른 감정일랑 접어두라는 얘기다.
자, 여기 한 여자의 시체가 있다. 이 여자는 어쩌다 죽게 되었을까? 영화는 그렇게 던져 놓고 몇 주 전으로 돌아간다. 방랑자 모나는 겨우내 프랑스의 시골을 떠도는 중이다. 허접한 텐트 하나로 숙박하는 히치하이커는 온갖 부류의 사람들을 스쳐 지난다. 냉대와 환대, 짧은 만남과 긴 만남을 무작위로 반복하는 동안 그녀가 지켜내는 원칙은 오로지 간섭과 통제로부터의 자유다.
영화는 그녀를 논픽션과 픽션의 혼합으로 그려낸다. 논픽션은 페이크 다큐가 되어 모나를 만났던 사람들을 인터뷰한다. "그녀가 부럽다", "안 씻어서 냄새 난다", "그런 여자는 약쟁이거나 남자를 밝힌다", "더 도와줬어야 했는데 걱정된다" 등등 평가는 각양각색이다. 픽션은 이 답변들을 극화하여 추적한다. 답변 중 완벽한 정답은 하나도 없다. 모두 부분적으로만 정답이다.
잠깐 스친 낯선 타인을 우리는 과연 제대로 평가할 수 있을까? <방랑자>는 상영되는 그 자체로, 개인의 서사를 담아내는 영화적 시간만으로 그것이 불가능한 일임을 드러낸다. 그렇다면 우리는 익숙한 지인도, 영화 속의 숱한 스테레오 타입도 잘 모르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이 근본적 질문은 모나의 죽음 앞에서 뒤로 밀려난다. 방랑자의 흐름이 죽음으로 봉합되면서 우리는 부분적 사실만으로 어찌됐건 진실을 구성해야만 한다. 모나에게 정착을 권유했던 양치기의 말대로 방랑은 그저 죽음을 향해 시들어가는 과정일 뿐이다. 타인의 환대를 냉소로 뿌리치고 의식주 때문에 생존을 위협받는 것이 방랑의 본모습이다.
방랑의 자유는 타인의 편견과 모진 생활을 견뎌내며 얻는 지독한 외로움의 자유다.
★Only One Cut
모나를 만났던 많은 사람들이 모나에 대해 증언하고 평가한다. 그러나 이 한 사람, 튀니지인 노동자 아순은 다르다. 아순은 떠도는 그녀에게 포도밭 가지치기 알바를 같이 하자고 제안한다. 그러나 둘 사이의 어색한 우정도 잠시, 다른 남자 노동자들이 몰려오면서 모나는 내쫓기듯 노동자 숙소를 떠난다. 그녀를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하는 아순에게 모나는 욕을 퍼붓고 떠난다. 영화의 중간 중간 무수히 끼어드는 페이크 인터뷰 중에서 아순의 차례는 맨 마지막이다. 아순은 한 마디도 하지 않는다. 대신 모나가 작업할 때 둘렀던 빨간 목도리의 냄새를 맡는다.
글/윤호준 (영화애호가, 자유기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