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의 거인들] 통영이 낳은 한국문학의 거장, 박경리
[경남의 거인들] 통영이 낳은 한국문학의 거장, 박경리
  • 김성대 기자
  • 승인 2019.08.14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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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박경리는 '문화예술의 고장' 통영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그가 25년 동안 집필한 역사소설 <토지>는 한국문학의 금자탑으로 평가된다.

소설가 박경리는 1926년 통영군 통영읍(현 통영시)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박금이(朴今伊)다. 1945년 진주여자고등학교를 졸업했고 1950년 서울가정보육사범학교 가정과(현 세종대학교)를 거쳤다.

1955년 소설가 김동리의 추천으로 단편 〈계산〉과 1956년 단편 〈흑흑백백〉을 <현대문학>에 발표하면서 박경리는 프로 작가로서 삶을 시작했다. 박경리라는 필명도 사실 김동리가 지어준 것이다.

등단 직후 박경리는 <불신시대> 등 단편소설을 주로 썼지만 50년대 말부터 6, 70년대엔 장편소설을 많이 썼다. 그가 쓴 장편은 대표작 <토지> 외 20여 편에 이르는데, 특히 <김약국의 딸들> <시장과 전장> <파시>는 평단으로부터도 따로 좋은 평가를 받았다. 

박경리는 1946년 결혼했다. 하지만 한국전쟁 때 남편 김행도가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된 이후 행방불명 됐고, 아들은 사고로 잃는다. 그가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는 이러한 불운을 내리 겪으며 감당해야 했던 슬픔을 견디기 위해서였다고 알려져 있다. 박경리의 딸 김영주는 1973년 '저항시인'으로 불린 김지하와 결혼했다.

'통영의 딸' 박경리 하면 대중은 소설 <토지>를 먼저 떠올린다. 그는 1969년 이 대작을 쓰기 시작해 1994년 탈고했다. 무려 사반세기 동안 그는 오직 <토지> 집필에만 몰두했는데, 1부를 쓰던 중엔 암 선고를 받고 수술을 하기도 했다. "동학에서 광복까지 사람들의 삶을 총체적으로 그려낸 한국문학의 기념비적인 작품"이라는 찬사를 받은 <토지>는 영어와 일본어, 프랑스어 등으로도 번역됐다.

'헤비 스모커'로 유명한 박경리에게 2007년 7월말 폐암 선고가 내려졌다. 그러나 작가는 고령을 이유로 치료를 거부했고, 병세는 뇌졸중까지 동반하며 그를 의식불명 상태로 몰아갔다. 그는 결국 2008년 5월 5일 향년 83세로 세상을 등졌다. 대한민국 정부는 작가 사망 직후 금관문화훈장 추서를 결정했다. 고인의 묘소는 통영시 산양읍에 있다.

박경리는 2003년부터 <토지> 이후를 배경으로 한 소설 <나비야 청산(靑山)가자>를 연재하기 시작했지만 작가의 죽음으로 작품은 끝내 미완으로 남고 말았다. 

정리 김성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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